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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코어뱅킹 현대화 사업 시작

 지난 5월, KB국민은행이 자사의 계정계 시스템을 클라우드 네이티브 환경으로 재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그간 국민은행의 차세대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대략적인 방향에 대해서만 논의되는 분위기였으나, 구체적인 시작을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흥미롭다. 국민은행의 코어뱅킹 현대화 사업은 국내 은행업권에서 한 번도 시도한적 없는 형식의 사업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리딩뱅크인 국민은행. 이러한 규모로 인해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한 국민은행이 이렇게 과감한 결정을 내린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KB국민은행의 코어뱅킹 현대화 사업이 기존 금융권의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와 다른 점

 국민은행의 사업발표가 주목받은 이유는 바로 그 사업의 진행방식에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국민은행의 코어뱅킹 현대화 사업은 국내 은행업권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형식이다. 그 차이를 살펴보자.

1. 빅뱅방식 탈피

 국민은행은 이번 사업을 한 번에 시스템을 구축해 교체하는 '빅뱅'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빅뱅 방식의 프로젝트는 비용절감 차원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었다.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자원과 인력을 일정 기간동안 태스크포스 조직으로만 유지하면, 프로젝트 종료 후에는 그 팀을 해체함으로써 비용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산업이 발전하면서 구축하고자 하는 시스템의 복잡성과 규모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데 있다. 빅뱅방식의 프로젝트를 통해 방대한 규모의 레거시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많은 시간과 자원을 필요로 한다. 국민은행과 같은 메가뱅크는 최소한 2~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대부분의 빅뱅방식 프로젝트는 구축요건을 초기에 확정하고 구현을 진행하는 폭포수 모델로 진행을 하게 된다. 결국 새로운 시스템은 가동과 동시에 2~3년 전에 기획한 컨텐츠를 서비스하게 될 것이다.

이 밖에도 빅뱅방식 프로젝트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여러 조직간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금융사 IT거버넌스의 질을 저하시킨다는 점, 요구사항과 구현품질의 불일치, 리소스 배분 등 여러 문제점을 지적받고 있었다. 국민은행은 자사의 거대한 코어뱅킹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교체하기 위해 서비스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프로젝트 진행방식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2. 코어뱅킹 내재화

 이번 프로젝트의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국민은행이 자사 인력을 활용해 직접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선언을 한 점이다. 기존 금융권의 경우 IT서비스 기업에 외주를 맡기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형식을 고수해왔다. 이는 IT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보수하는데 드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조치였다. 국민은행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태스크포스가 아닌 상시조직인 '코어뱅킹 혁신팀' 을 발족하고, 개발 사안마다 애자일하게 조직 규모를 키웠다 줄였다 하면서 개발생산성을 향상하는 전략을 펼치겠다고 했다.

 이와 같은 조직구조는 기존 금융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형태였다. 기존 금융사는 금융상품을 매개체로 하는 업무적 프로세스에 따라 조직을 구분하고, 이 업무를 도메인이 아닌 기술의 형태로 서포트 하는 조직을 IT부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네이버클라우드 출신의 박기은 전무를 영입해 테크혁신 본부장으로 임명했다. 다시 보면 코어뱅킹 혁신팀의 형태는 마치 네이버의 '셀' 조직구조와 닮은점이 많다. 특정 목표를 갖는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셀을 구성했다가, 또 다른 목표를 갖는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셀을 구성하는 형식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단어는 바로 '서비스' 이다. 국민은행은 조직개편을 통해 뱅킹을 서비스로 전환하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뱅킹은 곧 금융상품을 의미한다. 아직 우리나라의 금융은 금융사가 중심이 되어 금융상품의 레이아웃으로 고객을 통제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과 테크핀 업체의 성장, 오픈뱅킹 서비스의 등장과 같은 변화는 규제에 의해 보호받고 있던 기존 금융사들을 경쟁의 판으로 이끌고 있다. 이제 금융사들은 상품이 아닌 서비스, 즉 고객을 위한 혁신적인 경험을 설계해 고객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금융사들에게 가벼우면서도 유연한, 게다가 내재화된 역량을 가진 조직을 요구하게 되었다.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전담조직이 필요해진 것이다.

3. 비용과 기간을 정하지 않았다

 국민은행은 또 하나의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코어뱅킹 현대화 프로젝트의 종료일자와 비용을 정하지 않았다. 태스크포스 팀이 아닌 상시조직을 구성했기에 가능한 의사결정이다. 박기은 전무는 인터뷰를 통해 '목표 일정을 정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내부 인력이 개발을 주도하는 체계를 만들어 나가겠다' 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내용은 또 하나의 시사점을 준다. 그간 금융권에서는 IT조직과 시스템을 비용으로 인식해 왔다. 고객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주체가 아니라 축소하고 절감해야 할 지원조직으로 간주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서비스 품질의 향상작업을 도모하기 힘든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었고, 현재 디지털 시장의 주류인 플랫폼 기업과의 비교열위로 나타나게 되었다.

 국민은행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 네이티브 뱅크' 로 도약하는 기반을 갖추겠다는 계획을 언급했다. 금융권을 비롯한 전 산업군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메가 트렌드이다. 그러나 전사적인 조직의 정체성을 전환하는 것은 제외된 채로 시스템만 교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국민은행은 전행의 조직역량을 디지털 기반으로 재편하는 작업을 통해 기존 금융사들과 차별화된 조직체계를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선택과 향후 전망

 국민은행의 선택이 더욱 의미있는 이유는 리딩뱅크로써 업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금융 서비스는 상당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디테일한 면에 있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KB금융그룹의 서비스 앱이 50개가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을 것이다. 이게 단순히 용도별 서비스의 분리제공 이라는 목적에 의해 산출된 결과물일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금융산업은 전통적인 규제산업으로 오랜 기간동안 규제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아왔다. 규제와 서비스가 상호작용을 이루어 가면서 산업이 발전하면 참 이상적인 형태였을 것이다. 규제속에서 느슨해진 금융사간의 경쟁구도는 금융기관의 본래 존재 목적인 '자본의 수요자와 공급자간의 연결' 이라는 가치제공을 상실한 채 왜곡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었고, 이는 디지털금융 서비스 품질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었다.

 국민은행은 변화하는 시장환경과 자신을 단단하게 보호해주었던 규제에 균열이 생기는 것에서 위기감을 느낀 듯 하다. 기존의 조직운영 방식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면 이번 발표와 같은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다음 포스팅을 통해서 국민은행이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와 국내 금융IT 산업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고, 국민은행의 선택이 업계에 어떠한 변화를 불러일으킬지에 대해 작성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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